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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체부자유학생에서 장애학생, 지금은 장애인 아빠인가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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최충일 사회복지전문위원
기사입력 2021-05-30

[분당신문] 사진은 '1997 지체부자유학생 실기대회' 때의 모습이다. '지체부자유' 라는 말이 지금 들어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  중2 때 부터 매년 대회에 참여하는 등 과거부터 사용했기 때문이다.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은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.

 

내가 다니던 학교 주변에는 묘지들도 있었고, 안산시화공단이 있어 아침운동 시간마다 쓰레기 냄새가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. 외딴 섬처럼 느껴졌다. 스쿨버스, 자가용을 타지 않고서는 시내를 구경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.

 

▲ 1997년 지체부자유학생 실기대회 참가 때의 모습이다.

 

매년 장애인직업기능 실기대회, 정보검색대회 등이 있었다. 나는 라디오 조립과 컴퓨터 프로그래밍, 워드프로세서 등으로 중2 부터 학교를 대표해서 참가 했었다. 그 당시 진로에도 영향을 줄 정도로 아주 큰 대회였다. 지금도 이런 종류의 대회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.

 

내가 다니던 특수학교는 전국대회에서 늘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. 그래서 학교의 이름을 걸고 뽑힌 대표선수처럼 책임감이 무거웠었다. 대회 전 관광명소를 다닐 수 있었으며, 맛있는 음식과 지역 명소들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.

 

교장 수녀님도 매년 응원하러 함께 오셨는데, 인자하신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. 과거를 돌아보면 현재가 있기까지 참 빠르게 변한것만 같다. 시간이 흐른 지금, 나는 '지체부자유학생'에서 '장애학생',  지금은 '장애인 아빠'. 늘 장애가 꼬리표 처럼 달린다.

 

과거나 지금이나 그렇다. 나와 함께한 선후배, 친구들은 현재를 어떡해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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